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0일 미국·멕시코·캐나다 3국의 무역 협정인 USMCA에 대해 “취임하면 멕시코·캐나다에 USMCA의 6년 차 재협상 조항을 발동한다고 통보할 것”이라고 했다. USMCA는 트럼프가 1기 때 미국의 무역 적자가 크다는 이유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해 2020년 발효된 것이다. 6년마다 협정 이행 사항을 검토하게 돼 있는데, 다음 미국 대통령 임기인 2026년에 첫 시점이 도래한다.
트럼프는 이날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 경합주인 미시간주(州) 디트로이트의 ‘디트로이트 이코노믹 클럽’ 행사에서 2시간 가까이 연설을 했다. 트럼프는 “중국이 현재 멕시코에 거대한 자동차 공장을 짓고 있다”며 “이 차량을 미국에 모두 판매하려 생각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미시간주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내가 100%, 200%, 1000% 등 필요하면 관세를 얼마든지 부과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 USMCA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멕시코에서 생산된 차량에 대해 무(無)관세를 보장하는데, 중국 업체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게 트럼프의 문제의식이다.
이날 트럼프가 연설한 미시간은 포드 등 미국의 3대 자동차 업체 본사가 있는 곳으로, 박빙의 승부 속 노동자 표심이 특히 중요한 경합주다. 트럼프는 “바이든·해리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고(高)물가로 미국 가정의 자동차 구입 비용이 폭등했다”며 “아메리칸드림에 재앙이며 자동차 제조업체들에도 심각한 위기”라고 했다. 이어 “노동자를 위한 대규모 감세안을 통과시킬 것”이라며 자동차 대출에 대한 이자 전액 공제, 팁과 초과 노동 수입에 대한 면세 등을 공약했다. 트럼프는 “중국과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자율주행차를 금지할 것”이라며 “트럼프에 투표하면 제조업 일자리가 베이징에서 디트로이트로 대규모 엑소더스(exodus)하고 자동차 산업은 르네상스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트럼프가 바이든 정부 실정(失政)을 부각하며 “나라 전체가 디트로이트처럼 될 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이 지역 비하 논란을 낳고 있다.
트럼프는 1기 때인 2017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밀어부쳐 이듬해 타결을 이뤄냈다. 트럼프는 ‘미국 자동차 수입에 대한 안전 기준 적용 완화’를 골자로 한 FTA 개정을 자신의 무역 정책 성과로 꼽아왔는데, 유세 때 종종 “끔찍한 합의에 대해 우리는 훌륭한 재합의를 해냈다”고 말해왔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트럼프 참모들이 미국의 적자 폭이 큰 한미 FTA에 대한 문제 의식이 상당하기 때문에 트럼프 재선시 재협상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라이트하이저의 측근이자 USTR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제이미슨 그리어 변호사는 올해 5월 본지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모든 국가와의 무역 관계를 들여다볼 것”이라며 “트럼프는 문제가 있다면 무역 협정을 그대로 두지 않을 거고, 이건 한국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다. 모든 무역 협정은 미국인의 필요에 맞게 재단(tailored)돼야 한다”고 했다. “한미관계는 여러 이유로 정말 중요한데 무역 분야에서 도전을 식별하고 정면 대처하는 것이 더 좋다”고도 했다.
김은중 기자